가상자산 업계가 수년간 공들여 추진해온 시장 구조 법안이 미국 상원의 첫 번째 관문을 넘지 못했다. 지난 9월 15일 ‘CLARITY 법안’으로 알려진 디지털 자산 시장 명확성 법안(Digital Asset Market Clarity Act)을 진전시키기 위한 절차 표결에서 찬성 50표, 반대 49표가 나왔다. 단순 과반은 확보했지만 토론 종결에 필요한 60표에는 미치지 못했다.

법안 표결 바로 다음 날에는 또 다른 변수가 등장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023년 이후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한 것이다.

이틀 연속 대형 악재가 이어지자 비트코인(BTC)은 한때 7만5,000달러대로 밀려났다. 그러나 시장은 예상보다 빠르게 충격을 소화했고, 비트코인은 이후 8만달러를 되찾은 데 이어 8만2,000달러까지 돌파했다.

규제 불확실성과 금리 인상이라는 두 가지 악재에도 가격이 오히려 강하게 반등했다는 점에서 시장에서는 이번 움직임이 새로운 강세 흐름의 시작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분석은 PrimeXBT의 수석 시장 분석가 Jonatan Randin이 99Bitcoins를 위해 작성했다.

상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CLARITY 법안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상원에서 60표를 확보해야 했다. 공화당이 단독으로 확보할 수 없는 숫자였기 때문에 민주당 의원들의 초당적 지지가 필수적이었다.

실제로 민주당 의원 일부는 수개월 동안 법안 문구를 둘러싼 협상에 참여해 왔다. 그러나 최종 절차 표결에서는 민주당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했다.

공화당에서도 이탈표가 나왔다. 특히 톰 틸리스(Thom Tillis) 의원은 법안을 완전히 포기해서가 아니라 향후 재심의 동의를 제출할 수 있는 절차적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반대표를 던졌다.

결과적으로 법안은 찬성 50표, 반대 49표를 기록했다. 과반수는 넘었지만 토론을 종결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60표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처리가 중단됐다.

법안이 무너진 이유

막판 협상에서 가장 큰 걸림돌 가운데 하나는 윤리 규정이었다.

민주당 측은 고위 공직자와 가족의 가상자산 관련 이해상충을 막기 위한 기존 조항이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가족의 가상자산 사업을 둘러싼 문제가 협상 과정에서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

이외에도 스테이블코인 보상과 은행 예금 유출 문제, 주 정부의 집행 권한, 탈중앙화 금융(DeFi)에 대한 규제 범위 등을 놓고 이견이 이어졌다.

은행권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예금과 경쟁할 경우 지역 은행의 자금 기반이 약해질 수 있다며 보다 강력한 제한을 요구했다.

일부 주 법무장관 역시 연방 차원의 새로운 규제가 가상자산 사기와 불법 행위를 조사하는 주 정부의 기존 권한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DeFi 역시 논쟁거리였다. 실제 통제 주체가 존재하는 프로토콜을 어디까지 탈중앙화 서비스로 인정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경우 등록 의무를 부과할 것인지를 두고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여러 차례 수정안이 제시됐음에도 양측이 60표를 확보할 수준의 합의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CLARITY 법안은 폐기된 것인가?

이번 표결 실패가 CLARITY 법안의 공식적인 폐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법안은 여전히 의회에서 다시 논의될 수 있으며, 틸리스 의원의 절차상 반대표 역시 재심의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한 조치였다.

다만 2026년 안에 법안을 최종 통과시키기 위한 시간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11월 중간선거와 의회 일정까지 고려하면 올해 안에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 다시 표결에 나서는 것은 이전보다 어려워진 상황이다.

예측 시장에서도 기대는 크게 낮아졌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CLARITY 법안의 연내 제정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던 시장 참여자들은 최근 들어 전망을 빠르게 낮췄다.

그럼에도 이번 표결을 법안 자체에 대한 최종 부결로 볼 필요는 없다. 핵심 쟁점을 둘러싼 정치적 협상이 다시 시작되고 충분한 표를 확보한다면 재추진 가능성은 남아 있다.

멈추지 않는 규제 당국의 움직임

의회의 입법이 정체됐다고 해서 미국의 가상자산 규제 작업까지 멈춘 것은 아니다.

오히려 CLARITY 법안 표결 실패 직후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자체 권한을 이용한 새로운 디지털 자산 정책을 발표했다.

SEC는 9월 17일 ‘혁신 면제(Innovation Exemption)’를 도입해 특정 토큰화 미국 상장 주식을 허가된 온체인 거래 환경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한시적·조건부 면제를 승인했다.

이번 조치는 CLARITY 법안의 공백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회 입법과 별개로 규제 기관이 기존 권한을 활용해 디지털 자산 시장의 제도화를 추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SEC는 이번 조치가 토큰화된 증권 거래를 시험하고 향후 보다 장기적인 규제 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중간 단계라고 설명했다.

코인베이스 CEO 브라이언 암스트롱 역시 CLARITY 법안 표결 이후 의회만이 규제 명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경로는 아니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다만 규제 기관이 자체적으로 만든 규칙은 법률과 동일한 지속성을 갖지는 않는다. 향후 행정부나 규제 기관의 정책 방향이 바뀌면 수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규제 명확성을 위해서는 결국 의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비트코인이 악재를 무시한 이유

비트코인이 빠르게 반등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두 가지 대형 악재가 시장에 상당 부분 선반영돼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CLARITY 법안의 상원 통과 가능성은 표결 이전부터 크게 낮아진 상태였다. 실제로 법안 진전이 무산되자 비트코인은 약 4% 하락해 7만5,000달러대로 밀렸지만, 가상자산 관련 주식보다 낙폭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코인베이스와 서클 주가는 당시 각각 약 9% 하락하면서 규제 명확성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이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연준의 금리 인상 역시 시장이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였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9월 16일 12대 0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25bp 인상해 목표 범위를 3.75~4.00%로 높였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며 물가를 2% 목표로 되돌리기 위해 이번 조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비트코인이 추가 급락하지 않자 시장에서는 숏 포지션 청산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가격 상승이 다시 숏 청산을 유발하는 숏 스퀴즈로 이어지면서 반등 속도가 빨라졌다.

현물 ETF 자금도 상승세에 힘을 보탰다. 지난 금요일 미국 현물 비트코인 ETF에는 약 4억3,300만달러가 유입되면서 기관 수요가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시장은 이미 알려진 악재보다 이후의 수급과 규제 기관의 후속 조치에 더 큰 비중을 두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BTC/USD 차트 분석

일봉 차트에서는 20일 및 50일 지수이동평균선(EMA)과 상대강도지수(RSI)를 통해 최근 가격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 8월 7만달러 구간을 돌파한 이후 비트코인은 RSI의 과열이 해소되는 동안 상당 기간 박스권에서 거래됐다.

최근에는 이 박스권 상단이었던 8만2,000달러 부근을 상향 돌파하면서 기술적 구조가 개선됐다.

이제 중요한 구간은 8만5,000달러다.

해당 가격대를 확실하게 넘어선 뒤 지지선으로 전환한다면 장기 차트에서 의미 있는 ‘고점 높이기(Higher High)’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이는 매수 세력이 다시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있다는 기술적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8만5,000달러 돌파 하나만으로 새로운 강세장이 확정됐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상승 구조를 확인하려면 돌파 이후 가격이 해당 구간을 유지하는지, 현물 ETF 유입이 지속되는지, 거래량이 상승세를 뒷받침하는지 등을 함께 확인할 필요가 있다.

8만5,000달러를 안정적으로 넘어설 경우 차트상 다음 주요 저항 구간은 약 9만5,000달러 부근이다.

반대로 가격이 다시 8만2,000달러 아래로 밀려난다면 최근 돌파가 일시적인 숏 스퀴즈에 그쳤는지를 다시 평가해야 한다.

향후 주목해야 할 일정

단기적으로는 9월 말 예정된 데리비트(Deribit)의 분기 비트코인 옵션 만기와 3분기 마감이 시장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

거시경제 측면에서는 연준이 선호하는 물가 지표인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가 중요하다. 연준이 9월 금리 인상 이후에도 추가 긴축 가능성을 열어둔 만큼 물가가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 국채 수익률과 달러가 다시 상승하면서 비트코인에 부담을 줄 수 있다.

10월 말 예정된 차기 FOMC 회의 역시 주요 변수다. 시장은 앞으로 발표되는 물가와 고용 데이터를 통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계속 재평가할 전망이다.

워싱턴에서는 CLARITY 법안 협상이 다시 시작되는지도 지켜봐야 한다. 이번 절차 표결 실패로 연내 입법 가능성은 크게 낮아졌지만 법안 자체가 공식적으로 폐기된 것은 아니다.

현재까지의 가격 흐름만 놓고 보면 CLARITY 법안의 좌절은 비트코인 자체보다는 미국 가상자산 산업의 규제 환경에 더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했다.

비트코인은 규제 불확실성과 연준의 금리 인상을 모두 소화한 뒤 주요 저항선을 돌파했다. 이제 이번 움직임이 새로운 강세장의 초기 신호로 이어질지는 8만5,000달러 이상에서 가격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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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hyun Lee
Jihyun Lee
암호화폐 에디터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 교육에 주력하는 저술가로서 탄탄한 커리어 배경을 가진 본 에디터는, 현재 99비트코인 소속의 정규 직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지현 에디터는 복잡한 기술적 개념을 일반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내는 데 전문성을 발휘하며, 암호화폐 입문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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